을미년에 바라는 일들 일상

이루고자 하시는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靑羊의 해에 첫 인사 드립니다.

을미년 새해를 맞이하여 결의에 찬 결심 하나 정도는 다들 하셨겠지요? 해가바뀌고 나이를 먹으면 으례 결심을 합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겠다,금연을 하겠다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마치 해마다 세우는 사업계획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사업의 결과는 언제나(?) 요원한 일인 것처럼새해에 세운 우리들의 단호한 결심은 거의 매년 되풀이 되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합니다. 저 역시 362일동안 실행되지 못하고 매장된 채 숨어있던 몇 가지의 결심들이 이맘때만 되면 슬금슬금 고개를 쳐들고 나오기일쑤입니다.

연초에 세우는 모든 결심들이 꾸준히 실천되어 왔다면 우리는 모두 아주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더 이상 추가할 새로운 결심이 없음에 따분해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초의 결의에 찬 우리들의 계획을 잘 들여다보면 주변에 덩달아서 계획을 세우는,계획을 위한 계획이 아닌지 의문을 가져봅니다. 과연 새로이 세우는 계획의 내용처럼 사람이그리 쉽게 변할까요? 364일 동안 운동에 대해서 생각도 안 해본 사람이 해가 바뀌었다고 몸짱이 되고, 매일처럼 담배를 두 갑 이상 피우던 사람이 금연을 하여 주변을 놀라게 하는 일들이 쉽게 벌어질까요?

밉상덩어리였던우리 상사가 해가 바뀌면서 존경 받는 리더가 되고 말썽만 피우던 후배가 1월이 되니 돌연 믿음직한 사람이되는 경우는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해가바뀐다고 해서 변화되는 것은 없습니다. 나이가 변하는 것 역시 따지고 보면 매일매일 1/365살씩 먹어왔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변화된 무엇인가는 오랜기간 인내의 과정을 거치며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일 겁니다. 양질전화(量質轉化)하는셈이지요.

양질전화의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꾸준한 노력일 것입니다. 평소에 노력하는 일정한 양()의 증가가 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꾸준한 운동과 체력관리라는양의 투입이 건강한 몸이라는 질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며 금연을 위한 꾸준한 노력과 결심의 조각들이 합쳐졌을 때 비로소 원하는 성과를 얻을수 있는 것이지요. 신뢰받는 상사와 후배의 모습 역시 해가 바뀌기 때문이 아니라 평소의 지속적인 노력의과정들이 누적되어 나오는 결과일 것입니다.

내년에세울 결심들을 미리 생각해 보시고 올해부터 조금씩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지요? 노력의 꾸준함이 가져다줄 질적 변화를 꿈꾸면서 말입니다.  

그나저나 올해는 담뱃값 인상으로 금연 결심 하나만큼은 필달(必達)하실 분들이 꽤나 많을 듯 합니다.




명량의 시대정신 일상

영화 ‘명량’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개봉일 하루 만에 68만 명이라는 최다 관객 수를 기록하더니 최단 기간 내 1,000만 명을 돌파하였다. 아성(牙城)과도 같던 아바타 1,360만 명의 최고기록도 갈아치우며 연일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다. 파죽지세(破竹之勢)라 함은 지금의 상황에 쓰는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커다란 성공과 실패에는 항상 그 이유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 뒤따르기 마련인데 ‘명량’ 역시 호불호가 나뉘어지는 의견들로 분분하다.

호(好)를 말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대체로 이러하다. 혼돈과 불신, 갈등으로 팽배한 현실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리더를 갈망하고 있던 우리에게, 치유와 통합이라는 큰 리더로서 이순신이 다가왔다. 수군해체를 명하며 권율의 육군에 합류하라는 선조의 명령에도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라며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연한 모습에서 우리들의 가슴 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감동의 감탄사를 길어 올렸으며, ‘필사즉생 필생즉사 (必死生 必生死)’ 즉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라는 명료한 말로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에게 위기극복의 요체를 알려주었다. 또한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라는 말을 통해 왕에 대한 충정과 백성에 대한 애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이 말은 지금 우리의 현실 상황과 가장 오버랩 범위가 커서 많은 관객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였을 것이다.

한편, 불호(不好)를 말하는 사람들 의견의 공통점은 이성적이고 사실적 사고의 결과인 경우가 많은 듯 하다. 백병전이 일어나지 않았고, 적함에 돌진하여 배와 배가 충돌하게 하는 ‘충파’전술이 없었던 명량대첩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표현한 점(물론 영화적 재미를 더하기 위한 의도적 픽션이라는 의견도 있지만)과 물살이 거세기로 유명한 울돌목 회오리 중심에 빠진 이순신의 판옥선을 백성들 몇 척의 힘으로 끌어 올리는 장면은 이성적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영화에의 몰입을 방해하는 주요한 요소들로 작용했을 것이다.

모두 일리있는 주장들이지만 ‘명량’ 성공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설명한 호와 불호의 의견들을 면밀히 살펴보고, 무엇이 지금의 흥행돌풍을 있게 하였는지 곰곰이 사유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란 현실세계에서 있을 법한 내용을 기본으로 관객의 재미를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적절한 스토리로 구성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불호의 견해는 쉬이 받아들이기 힘들다.  데블스 애드보킷(Devil's Advocate)제도처럼 반대의 견해가 상황의 본질에 가깝게 다가가게 해 주는 촉진제 역할을 해주는 것이라 믿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호의 의견을 깊이 있게 들여다 봄으로서 ‘명량’ 흥행의 본질에 더욱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이순신의 외골스런 용기와 통합의 리더십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원하는 리더의 모습이 모두의 마음 속에 존재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괴리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순신을 바라보며 대리 만족을 느꼈으리라. 그러나 나는 오히려 상영관의 빼곡한 좌석들 사이에서 채워지지 못한 채 자리하고 있는 공허한 우리 시대의 결핍을 보았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무언가가 결핍이란 형태로 우리들에게 다가온 것이다. 따지고 보면 결핍이야말로 그 시대를 나타내는 키워드이자 시대정신이다. 1980년대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그러나 결핍이었던 요소가 ‘자유’였다면, 2014년 지금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결핍 요소는 바로 ‘리더십’인 것이다. 이순신은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나지막한 외침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리더들을 향해 대성일갈하며 죽비를 내려친다. 깨어나라며 목이 쉬라 외치고 있다.




좋은 사람은 좋은 리더인가?

자신의 결정에 대해 다른 이들로부터 항상 동의나
인정을 받지 않고 지낼 수 있는가?
리더는 특히 일을 추진해 나갈 때 항상 동의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비생산적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리더를 좋아하는가가 실제로
중요한 문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주위의 사람들과 협력하여 나오는 업무의 Quality다.

현명한 리더라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일의 질(質)은 손상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 리더의 중요한
직무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리스크는 본질상 누구에게도 유쾌한 것이 될 수 없다.


당나귀의 삶 일상

"하느님은 모든 동물에게 30년의 생명을 주었다.
그러나 모든 동물이 다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당나귀와 개와 원숭이는
늙는 것이 두려워 30년 가운데 후반 몇 년을 깎아달라고 청했다.
하느님은 친절하게도 모든 소원을 들어주었다.

마침 사람이 나타나 30년 세월의 짦음을 호소하자 하느님은 역시 친절하게도
동물들에게서 잘라낸 세월을 사람에게 얹어주었다.

그래서 인간은 타고난 첫 30년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산다.
희망이라는 뽀얀 피부와 젊음 속에서 고뇌조차 달콤한 아름다운 인생을 꿈꾼다.

그 다음 18년은 당나귀에게세 받은 생애다.
그래서 쉬지 않고 일하고 채찍질을 당하며 일상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 다음 12년은 개에게서 받은 생애다.
양지에 엎드려 웅얼거리고 으르렁거리거나 졸며 지낸다.

나머지는 원숭이에게서 받은 생애다. 비로소 이때가 되면 자유로워진다.
제 좋을 대로 행동하지만 이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가 된다.
모든 관절이 녹슨 문짝처럼 삐걱거리고 겨우 걷고 먹을 수 밖에 없게 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비극이다"

'백설공주','헨젤과 크레텔'등으로 유명한 그림 형제의 우화집에 나오는 이야기다.























수 년전, 영국에서 삶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40대의 만족도 결과가 가장 낮은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삶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상대적으로 적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는
20대 초에는 비교적 만족도가 높았으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낮아져
46세 때 바닥을 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이후 다시 높아지기 시작해 74세 때 만족감이 절정에 이르렀다.
일상의 부담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삶을 즐기며 만족할 줄 아는
여유를 찾는 시기가 70대 중반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40대의 삶을 규정하는 단어는, 자녀교육, 주택비, 명퇴 등으로
표현되는 '부담'과 '불안'이다. 자기를 위한 노후대책은 있을 리 없으며,
언제 퇴출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일상화되어 있는 40대의 모습이란,
견디기 힘든 등 뒤의 커다란 짐을 지고 휘청거리며 걸어가는 영락없는 당나귀다.

자기를 돌볼 여유 없이 주변환경에 따라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대한민국의 40대는 불혹이 아닌 갈대다.





당신은 전문가(Professional)인가요? 일상

‘1만 시간의 법칙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루에 3시간씩 노력한다면 약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립니다.
10
년간 자신의 분야를 탐구하고 천착한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전문가일 것입니다.
10
년이란 시간이 말해주듯 전문가란 쉽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전문가란 오랜 세월을 참고 견딘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훈장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한 분야에서 꽤나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신감 있는 모습과 질문에 대한 구체적이고 알기 쉬운 설명, 자연스러운 전문용어의 구사
등은 전문가라 불리기에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듯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속 깊은 곳의 일렁대는 불편함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유일무이한 답이라고 확신하는 자신감 뒤에 숨어있는 교만.

자신의 부족함을 전문용어의 뒤에 숨기어 포장하려는 좋지 않은 의도.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으며 더 나은 답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겸손의 부재.

그에게서 받은 이러한 느낌이 바로 나의 불편함의 원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겸손함이란 능력에 근거하며 교만과 자만은 무능력에 기인합니다.

결국 실력 있는 사람만이 겸손함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겸손은 전문가로서의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만은 실력이 없는데 실력이 있는 것처럼 착각할 때 발생합니다.

 

모든 것을 잘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른다고 단호히 말할 수 있는 사람.

나의 생각이 유일한 답이 아니라 더 나은 답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전문용어의 뒤에 숨기보다 알기 쉽고 구체적인 표현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려면 상당한 실력을 겸비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힘들겠지요.

실력과 겸손, 부족함과 교만은 상생의 관계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 주위에 전문가를 자처하는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진정한 전문가를 판별할 때,
겸손함이라는 새로운 잣대를 활용해 봄은 어떨런지요? 분명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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